소소한 영화 리뷰/중간 영화 리뷰

영화 가버나움 - 가난 속에 피어난 영민함이라는 절망. 그리고 그 영민함이 만들어낸 기적.

개죽 2019. 7. 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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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

가버나움:

갈릴리 바다 북쪽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도시. 예수가 고향인 나사렛에서 옮겨 산 곳으로,

갈릴리 전도(傳道)의 중심지가 됨.


영화 내용.(결말 있음. 스포 있음)

가버나움.

영화는 어린아이의 유치로 나이를 확인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나이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자인은 사람을 찌른 죄로 수감 중이다. 

그는 감옥에서 방송국에 연락을 해 부모님을 고소한 상태였다. 

가버나움 자인 알 하지

가난하게 태어나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다며 자식들을 낳은 걸 후회한다고 

말하는 자인의 아버지. 

판사는 아이에게 부모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자인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이후 이어지는 작고 초라한 소년의 강퍅한 삶. 

많은 동생들의 장남으로 태어난 자인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11살짜리 여동생 사하르를 노리는 아사드의 가게에서 어른처럼 일을 하고

밤이면 거리로 나와 어린 동생들과 비트 주스를 판다. 

그렇게 일을 하고도 소년은 거짓 처방전으로 타온 약을 빻아 의류에 묻혀 건조해 

감옥에 넣어주는 어머니의 일을 돕는다. 

가버나움

 또래보다 유난히 영리하고 똑똑한 자인은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던 중 자인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겨우 11살밖에 되지 않은 소중한 여동생 사하르가 아사드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이다. 

자인은 필사적으로 끌려가는 사하르를 잡아보지만 작고 연약한 자인은

엄마와 아버지를 막지 않는다. 

그런 부모를 용서할 수 없었던 자인은 그 길로 집을 나간다. 

먹을 것도 돈도 없는 소년에게 아무도 일거리를 주지 않는 곳에서 

자인은 에디오피아에서 온 라힐을 만난다. 

가버나움 잠든 요나스

피부색이 다른 그녀는 갓난아이를 숨기고 일을 하는 불법 체류자 신세였지만 

안쓰러운 자인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인에게 어린 요나스를 맡기고 일을 다니기 시작한다. 

라힐과 요나스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지는 자인. 

가버나움

하지만 임신 때문에 일하던 집에서 도망친 라힐은 가짜 체류증에 

있는 사진처럼 매일 점을 찍고 밖에 나가야 하는 신세였다. 

설상가상 만료를 앞둔 체류증 때문에 돈이 필요했던 그녀는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돈을 구해보지만 돈이 나올 구멍은 어디에도 없다. 

돈을 구하기 위해 긴 머리카락까지 자른 라힐은

시장에 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장을 봐서 돌아오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자인과 요나스 

아침이 되도 돌아오지 않는 라힐을 찾아 나선 아이들. 

자인은 요나스를 안고 그녀가 일하는 직장은 물론 가짜 체류증을 

만들어 주는 아스프로의 가게까지 찾아가 보지만 라힐은 보이지 않는다. 

가버나움 라힐

불법 체류자 단속에 걸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라힐.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인과 요나스. 

배가 고파서 우는 요나스를 위해 남의 집 아이의 분유까지 훔치는 자인.

하지만 자인의 마음을 모르는 요나스는 모유와 다른 분유 맛에 고개를 돌린다. 

가버나움

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 자인은 시리아 난민 소녀를 만난다. 

자인만큼이나 처절한 삶에 이골이 난 소녀.

난민 소녀는 돈을 벌어 스웨덴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곳에 왜 왔냐고 묻지 않는다는 그곳. 

그곳에 가기위해서는 시시 탐탐 요나스를 노리는 아스프로에게 돈을 

지불하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인. 

그는 돈을 벌기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부모들이 했던 것처럼 

처방전으로 약을 사 바닷물을 섞어 팔아보지만 

농도가 부족한 가짜 약이 어른의 세상에 통할 리가 없다. 

라힐의 집에서까지 쫓겨난 자인과 요나스. 

가버나움 요나스

자인은 길거리에 요나스를 버리고 도망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절망한 소년은 끝내 요나스를 길에 버리지 못한다. 

결국 큰 결심을 한 자인은 요나스를 데리고 아스프로의 가게로 찾아간다. 

가버나움.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요나스를 넘긴 자인은 이 나라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아스프로는 자인에게 출생증을 가져오기만 하면 바로 보내주겠다고 

말하고 돈을 준다. 

서류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는 자인.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도 소리를 지르고 폭력이나 휘두르는 그의 부모.

자인은 거기에서 애초에 출생 서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팔려간 여동생 사하르가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칼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자인. 

첫 장면으로 돌아온 영화는 수감된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원으로 이감되던 중 그곳에 잡혀있는 라힐을 만나는 자인. 

그녀는 아들은 대체 누구와 있냐고 울부짖는다. 

가버나움 자인의 부모

법정에서 만난 자인의 부모는 자신들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절대 영민한 자신들의 아들 자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그들.

자인은 그곳에서 자신이 왜 부모들을 방송국에 연락해 부모를 고소하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결혼 후 곧장 임신한 사하르가 출생증이 없어서 병원 앞에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감 중인 자인을 찾아온 어머니는 말한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 거야.'

그런 그녀에게 자인이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자인의 엄마는 또 임신을 했다고 말한다. 

꼭 딸을 낳아서 '사하르'라고 이름을 짓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자인이 대답한다.

"엄마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가버나움

법정에 선 자인은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나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아요.'

판사는 그런 자인에게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자인은 그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를 원한다고 답한다. 

영화는 불법 체류증을 만들고 사람을 사고파는 아스프로를 잡아들이고 

요나스를 구해낸다. 

구해낸 요나스는 무사히 라힐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영민한 소년 자인은 드디어 신분을 얻게 된다. 

가버나움 자인.


나의 사사로운 감상평:

차라리 똑똑하지 않았다면 자인은 그의 무식한 부모처럼

삶에 순응하며 아무것도 모른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또래보다 작은 체구와는 다르게 놀랍게 영민하다. 

여동생의 바지에 묻은 혈흔을 보고 자인은 소녀를 화장실로 데려간다.

그는 피 묻은 팬티를 빨아입히고 자신의 셔츠로 위기를 모면한다. 

훔친 패드를 건네며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웃집에 살던 소녀처럼 생리를 시작하면 자신의 여동생도 금세 

팔려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늦어버렸지만 여동생 사하르를 데리고 도망칠 궁리까지 했던 자인이었다. 

가난 속에 피어난 그의 영민함은 그토록 절망스러운 것이다. 

그저 사랑과 존중을 받는 어른이고 싶었던 소년. 

어린 여동생과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그의 소망을 

신도 무식한 부모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인은 틈틈이 거짓말을 한다. 

버스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할머니 댁에

간다고 대답하고.

라힐에게 가족 이야기를 할 때도 

여동생이 행복한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거리에서 시리아 소녀를 만났을 때도 

그는 자신과 요나스의 이름을 거짓으로 이야기하고. 

아스프로에게 라힐이 돌아왔다고 말한다. 

작고 초라한 소년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 작은 거짓말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인의 거짓말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세상이 작은 소년에게 허락한 무기가 겨우 

작은 거짓말뿐이라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판사의 질문에 자인은 

더는 동생들을 낳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조차 기대할 수 없는 부모에게 

어쩌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의 어머니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말이다. 

가버나움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참으로 잔인하게 

가난의 참상을 보여준다.

가난이라는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누비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안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무식한 자인의 부모는 사실 

진짜 죄인이 아니다. 

난민과 불법체류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뻔히 보이는 불평등을 좌시하며

넘쳐나는 곡식과 재화를 썩히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가 진짜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지 않음에도 매일이 목마른 

우리 모두가 라힐이며 자인이다. 

1 퍼센트의 금수저들을 위해

기가 막힌 불평등 위에 놓여 산채로 다져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니까. 

꼭 봐야하는 영화 가버나움!!

별 일 없으면 죽기 전에 꼭 보자!!

실제 저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어린 배우들은 도움을 받아 이제는 학교에 다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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